궁궐이야기

덕수궁이야기..(1)

김씨줌마 2012. 10. 22. 00:37

숙제도할겸  모처럼 덕수궁 나들이를 겸사겸사 했다...

덕수궁이 경운궁으로 불리던 시절....지금은 자동차들로 넘치는 저 넓은 길까지 궁터였다..

 

 

 

높은 빌딩과 호텔건물 사이로 삐죽이 보이는 저 기와지붕이 황궁우 지붕이다..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이 있던자리가 일제에 의해 모두 헐리고..지금은 부속건물만이

 빌딩숲 속에 남아있다..

 

 

원래 경운궁의 정문은  인화문(중화문이 마주보이는 자리)이었으나 궁궐의 정문 앞에 큰 길이 생기는

바람에 정문으로써의 기능을 다할수없어 경운궁의 동쪽문인 대안문이 자연스레 궁궐의 정문 역활을 하게

되었다....대안문으로 불리던중  경운궁 대화재 후 재건립 할때 대한문으로 바뀌었다..

 

 

대한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하마비와 금천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을 비롯한 탈것에서 모두 내리라는 뜻의 하마비....궁 밖에 있어야 마땅하나..

어지러운 시국에 대한문의 자리가 뒤로 옮겨지면서 자리를 잘못잡고 궁궐 안에 남아있게 된듯하다...

금천교역시....금천이라기보단...연못에 가까워 형식적인 금천교의 모습을 하고 있다....다른 궁궐의

금천교와 달리 네 기둥에도 서수가 아닌 연꽃 봉우리로 되어있다..

 

 

중화전의 정문인 중화문...

지금은 이렇게 사방이 뻥뚫려 뎅그마니 남아있지만....일제에의해 헐리기전엔 양쪽으로 행각이 이어져

있었다....오른쪽으로 일부만이 남아있다...

 

 

앞에 3칸 옆에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는 중화문...문 뒤로 보이는 작은 행각이 중화문의 양옆으로

이어져있었던 흔적임을 보여준다..

 

 

둥근모양의 기둥과 주춧돌, 네모모양의 주춧돌은 땅은 네모지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 사상에 따라

만들어졌다.....지금은 중화문의 주위가 뻥 뚫려있어 굳이 문을 통과하지않아도 중화전으로 갈수있지만..

예전엔 이 문으로 들어서야 중화전으로 향할수있었던 중화전의 정문이다.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으로 즉위식이나 외국사진 접견등 중요한 의식이 치뤄지던곳이다..

원래 중화전의 모습은 경복궁의 근정전처럼 중층건물로 되어있었으나 1904년 경운궁 대화재로 소실된후

1906년 재건할때 당시의 재정난과 어지러운 시국사정으로 인해 단층으로 축소 건립되었다...

 

 

다른 궁궐과달리 답도에는 용 문양이 새겨져있다..

 

 

답도의 용 문양과 노란색의 문살 그리고 우주를 뜻하는 정이 이곳이 황궁의 정전임을 말해준다..

 

 

중화전의 천정엔 강력한 왕권의 상징인 오조룡이 있다..

 

 

집 속의 집 닫집에는 어좌와 삼절곡병 그리고 일월오봉도가 놓여져있다..

 

 

노란 꽃살무늬가 햇빛을 받아 정전안으로 꽃잎을  띄우고있다..

 

 

중화전의 양 옆으로도 많은 행각들이 있었으나 이 역시 고종이 승하한후 일제에 의해 모두 헐리고 말았다..

 

 

 

드므...순 우리말로 넙적하게 생긴 큰 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이곳에 물을  가득 받아 화마로부터

궁을 지키기위한 벽사의 의미가 담겨져있다...겨울에는 드므의 물이 얼지않게 불을 지필수있게

삼발을 만들어두었다....

 

 

네개의 드므 중 동.서 양쪽의 드므엔 글씨가 새겨져있다...국태평만년...희성수만세....

나라가 태평스럽게 만년토록 지속되기를 기뻐하고 임금의 수명이 만년토록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종때 새겨넣었다고 한다.....만세라는 글자는 중국의 황제만이 사용할수 있어 조선에서는 사용하지

않았으나 대한제국의 선포와 함께 황제의 격을 갖춘 경운궁에서는 만세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한다..

 

 

대화재가 발생하기전의 경운궁.....중층으로 위엄있던 중화전의 모습이 보인다..

 

 

1904년 함녕전에서 시작된 화재가 번져서 경운궁 전각의 대부분이 손실되었던 경운궁의 대화재사진..

숯으로 난방을 하던 조선의 궁궐에선 이해하기 힘든 경운궁의 화재사진이다...

 

 

준명당과 즉조당 일원...

아관파천했던 고종이 경운궁으로 돌아온 후 중화전을 건립하기 전까지 정전으로 사용했으나 대화재때 이곳 역시 소실되어 후에 새로 건립되었다..

 

 

덕수궁에서 유일하게 단청을 하지않은 석어당..

임진왜란 이후 선조임금이 이곳에서 16년간 머물렀다고 한다...또한 이곳은 인목대비가 광해군에 의해 유폐

되었다가 인조반정이 성공한 후  인목대비가 석어당 앞 마당에 광해군을 꿇어앉히고 죄를 물었던 곳이기도

하다..

 

 

 

소박하면서 은은한  멋스러움에 빠져들게하는 석어당..

 

 

안에는 이층으로 올라갈수있는 계단도 보인다.....궁궐여인들의 눈물을 표현했다고 한다...

 

 

덕수궁 프로젝트 중 하나인 석어당 천정에도 은은하게 장식되어있다..

 

 

귀여움을 받으며 즐겁게 지내던 어린시절의 덕혜옹주의 사진부터  왕실 가족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어린시절 옹주가 입었음직한 고운 한복과 아기자기한 반짓고리들..

 

 

밤에 보면 더 좋을듯한 옹주의 성장과정이  안개처럼  보여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치원이었던 준명당....

고종황제가 국정을 논하고 외국사신등을 접견하기도 했으며  귀여운 딸인 덕혜옹주를 위해  선교사를 선생으로

들이고 함께 공부할 또래 친구들도 불렀다고 한다...

 

 

아이들이 놀다 다칠까봐 계단앞에 난간을 설치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준명당 내부..

 

 

100여년 전까지 제 역활을 다해 검댕이 자국이 남아있는 준명당 아궁이..

 

 

역시 건물 뒤로 만들어 놓은 준명당 굴뚝..

 

 

준명당과 즉조당..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해 강제퇴위된후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엄비)와 함께 침전으로 사용했다..

엄비는 원래 명성황후를 모시던 상궁이었으나 명성황후가 시해된후 고종을 보필하여 러시아공관으로 고종과

순종이 안전하게 피신하게 되는 결정적인 역활을 하였다....후에 비에 오른 엄비는 진명과 숙명여학교를

세우는등 인재양성에 뜻을두고 많은 교육업적을 남겼으나...갑자기 장티푸스로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즉조당의 내부모습..

 

 

즉조당에서 바라본 석어당의 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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