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이야기

임금들이 좋아했던 창덕궁 구경하기

김씨줌마 2012. 9. 20. 21:28

조선전기엔 이궁으로 조선후기엔 법궁으로 사용되었던 창덕궁을 구경했다..

임진왜란으로 궁궐들이 모두 불탄 후 광해군때 그 터가 불길하다는 경복궁보다 먼저 재건되어..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재건될때까지 270여년을 조선의 법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창덕궁..

창덕궁은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화재로인해 여러차례 소실과 재건을 거치면서 많은 변형도 있었지만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지어져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 평가받아  1997년 12월 6일에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현재 남아있는 궁궐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돈화문...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궁을 광해군때 재건할 당시의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일제감정기때 일본군에 의해 땅에 묻혀졌던 기단과 월대를 복원한 모습....옛날과 현재의 도로 높이가

달라졌음도 같이 느껴볼수있다...돈화문을 앞에서 바로 보기보단 조금 떨어져 돈화문로 쪽에서 궁을 바라보면

돈화문이 더 웅장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예전에 돈화문 이층에 종과 북이 있어서 하루 세번..정오와 인정(밤 10시) 그리고 파루(새벽 4시)에 시간을

알려주어 사대문이 열리고 닫혔다고 한다....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은 주로 임금이 사용하고...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으로 다녔다고한다..

 

 

학자나무라 불리는 회화나무...창덕궁의 회화나무는 모두 천연기념물이라고 한다...수령은 약 3-400백년쯤

되었으며 임진왜란 후에 심은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궁궐이외에도 학식이 높은 선비가 사는 마을에도

심었다고한다..

 

 

1997년 12월 6일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오밀조밀 보이는 기와의 모습에서 왠지모를 푸근함과 정겨움이 느껴진다..

 

 

규장각...역대 국왕의 시문. 친필...등을 보관 관리하고 학문을 연구하고 정사를 토론하던 왕립도서관...

정조가 즉위하면서 궁중에 설치되었는데..원래는 후원에 이층으로 만들어져 1층은 규장각으로 2층은 주합루

불렀는데...정조임금 사후에 그 기능이 줄어들면서 고종때에 이르러서는 지금의 궐내각사 영역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검서청....규장각의 부속건물로 규장각의 검서들이 입직을 하며 임금의 갑작스런 질문에 대비 했다고한다...

검서관들은 뛰어난 자질을 갖춘 서얼이 주로 임용되었으나 정조가 이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가문과 자질을 고려하여 후보자를 정하고 임금으로 하여금 결정하게 하여 임명 절차가 까다로왔다고한다..

 

 

궐내각사에서 바라본 궁의내전..

 

 

금천을 지나는 다리에도 창문을 달았다..

 

 

구선원전.....역대 임금의 초상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곳으로 궁궐 밖으로는 종묘가 있고...궁 안에는

선원전을 두었는데...종묘에는 중전을 비롯한 여자들은 참여할수없으나 이곳은 내전에 속해 음식준비등 여러

일에 중전도 참여했다고 한다....창덕궁에는 후원에 신선원전이라 하여 선원전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일제가 조선의 임금들이 선원전을 찾는것을 싫어하고 선원전이 정신적 지주 역활이 되는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멀리 외딴곳에 하나 더 만들었다고 한다..

 

 

임금이 선원전으로  갈때  머물렀던 양지당에서 바라본 인정전의 모습..

 

 

저절로 겸손해지는 궁궐의 작은 문들...머리를 조아리고 들지않으면 이마에 혹부리가 생기는것은 순식간이다..

 

 

옥당 이란 현판이 붙어있는 홍문관..조선시대 삼사의 하나로 궁중의 사적관리및  왕의 자문기관 역활을했다..

 

 

가림막처럼 설치되어있는 담...서로의 생활을 보호하기위해 만들어졌다고한다..

 

 

금(錦)천교....궁 밖에서 보면  금(禁)천교.....궁 안에서 보면  금(錦)천교....

다리에 귀면과 북쪽엔 거북상이 남쪽엔 해태상이 놓여져 궁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다고한다..

 

 

 

 

 

금천교를 지나 진선문을 지나 인정전으로 향한다....

 

 

인정문 주변의 궐내각사...궁궐에 들어와있는 인사를 처리하던 정청이 있고....인정반정 후 서인들에 의해

국왕을 호위한다는 명목아래 만들어진 호위청이 있다...

 

 

궐외각사에 있는 병조의 출장소 같은 내병조로 입구가 밖을 향하고 있다.....지금은 텅 비어 기둥만 남아있는

행각들이 모두 내병조와 같은 모습으로 입구는 안을 향하고 있었다고한다...

 

 

인정문에는 다섯개의 잡상이 올라가있다......잡상은 홀수로 올리는데....잡상수가 제일많은 건물은

경회루로 11개의 잡상이 올라가있다..

 

 

즉위식..책봉식..외국사신접견등 큰 행사를 하던 인정전 정전...

인정전 용마루등 문 장식등에 오얏꽃 문양이 보이는데 순종때 부터 쓴것으로 추정되어진다고 한다..

오얏꽃은 일본이 조선왕조를 비하하기 위해 썼다고도 하고 대한제국의 상징이라고도 보는데...순종때 국새의

인장으로 쓴것으로 보아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문양이라고 해석한다고 한다..

 

 

인정전에서 바라본 선정전..

 

 

인정전의 내부모습...마루로 되어있는 인정전의 바닥은 원래는 흙을 구워만든 전돌로 되어있었다고한다...

1908년 서양식으로 개조되면서 전등과 커튼을 달고  유리창문등으로 바뀌었다고한다..

 

 

근정전과 마찬가지로 밖에서 보면 이층으로 된것같은 구조지만....안에서보면 통층으로 되어있어 천장이

매우 높은  중층구조로 만들어져있다..

 

 

황실을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단청을 한 인정전의 문...

 

 

작은 드무가 두개 놓여져있다..

 

 

편전으로도 혼전으로도 사용되었던 선정전.....유일하게 남아있는 청기와라고 한다..

 

 

보존력은 강하나 매우 비싼값을 치루었던 청기와....많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광해군이 청기와를

올렸다고 한다.....혼전으로도 쓰였기에 복도각이 만들어져있다...

 

 

원래의 편전인 선정전이 비좁기도하고 종종 국장을 위한 혼전으로도 쓰여 침전이였던 희정당을 편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지금의 희정당은 원래의 모습과 많이 다른데...1917년 화재로 소실된후 다시 복원될때

일제에 의해 경복궁의 강녕전을 뜯어다써서....희정당도 강녕전도 모두 옛모습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희정당 앞의 모습은 순종의 어차가 드나들기 쉽게 근대식으로 만들어졌다...

 

 

오밀조밀...아기자기 하게 모여있는 각 전각들의 모습이 예쁘다....

 

 

 

 

 

 

 

 

 

붉은 카펫이 깔려있는 현대식의 희정당 내부..

 

 

임금이 각 전각을 다닐때 이용한 복도각....저 복도각으로 인해 한 전각에 화재가 났을때....다른 전각으로

불이 빨리 옮겨 붙었다고 한다...

 

 

왕비의 생활공간인 대조전....대조전 또한 화재로 소실되어 재건될때 경복궁의 교태전을 옮겨다 써서

창덕궁의 다른전각들에 비해 규모가 커서 조화롭지 못하다고 한다....대조전을 침전으로 사용하면서...

대청을 중심으로 동쪽은 임금이....서쪽은 중전이 사용했다고한다..

 

 

순종이 마지막 어전회의를 했던 흥복헌....복이 흥하라는 전각의 이름과 달리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국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수도와 오븐이 설치되어 근대식으로 바뀐  수라간..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수라간이라고 한다..

 

 

경훈각에 남아있는 매우틀을 이동하던 문..

 

 

숯을 사용하던 궁궐의 아궁이 모습..

 

 

계단으로 되어있는 화단..

 

 

 

 

 

이곳 어딘가에 연못이 있었음을 알려주고있다..

 

 

강(康)자가 새겨져있는 합각...글자 사이의 작은 공간은 뚫려있어서 바람이 통한다고 한다..

반대편에는 녕자가 새겨져있어 강녕전을 가져왔음을 알수있다..

 

 

세자의 공부방으로도....내의원으로도 사용했던 성정각..

동쪽 누각에 남향하여 붙은 보춘정 현판.....봄을 알린다는 의미로 이곳에서 매화를 잘 볼수있다고 한다..

 

 

정조때 몹시 가문해가 있었는데....이 누각을 짓기 시작하자 마침 비가 내렸고....또 한동안 가물다가

이 누각이 완성되어 임금이 행차하자 다시 비가 내려..정조가 기뻐하며 희우루라 이름 지어 기념했다고한다..

 

 

일제가 임의로 내의원으로 사용했던 성정각...성정각이 내의원으로 쓰였을때 임금의 약을 제조하던곳....

 

 

집희 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관물헌....세자와 임금이 공부하던 장소로...정조임금이 좋아하시던 곳이라한다..

지금의 현판글씨는 고종이 15세에 쓴 글씨라 다소 서툰 솜씨라한다..

 

 

지금은 없어진 중희당 터에 남아있는 동궁터의  삼삼와와 승화루...서고와 도서실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개방되어있지 않다...정조가 의빈 성씨와의 사이에서 얻은 문효세자를 위해 지었다는 동궁...

오랜기다림 끝에 얻은 세자였으나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나 세자궁으로써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한다..

 

 

지금은 까페로 변한 빈청의 모습....까페로 사용되고 있으나 옛모습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예전엔

삼정승이 모여 회의를 하던 빈청으로..일제감정기때에는 황실의 어차고로 사용되다 일제감정기 이후엔 이곳에

순종의 어차가 전시되어 있다가 어차가 고궁박물관으로 옮겨진후 비어있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창덕궁의 후원을 보지않고는 창덕궁을 다 보았다 말할수없다고 하는데....후원은 따로 예약을 해야해서

다른날 다시 돌아보기로 하고 낙선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