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전 주변과 석조전을 한바퀴돌고 정관헌으로 향했다...
석조전.....영국인 하딩이 설계를 맡아 신고전주의 양식을 따라지어졌다....대한제국 근대화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건립하여 고종황제가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100여년 전에는 상당히 신기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였을것 같다..
보수 공사중인 석조전....대한제국 황실의 문양인 오얏 꽃 문양이 보인다..
석조전에서 바라본 중화전의 조정..
고종황제가 가비 또는 양탕국이라 부르던 커피를 즐겨마시며 음악을 감상하던 휴식처 정관헌....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에게 부탁하여 지은 건물로 외국 사신을 접견하고, 서양세력의 힘을 이용해 보려는
고종의 외교적 노력을 볼 수 있는곳이라한다..
그당시 러시아에서 수입해왔을 타일로 만들어진 레몬스타 문양의 바닥 타일..
황제의 상징 황금색으로 칠해진 난간...100여년 전에는 정말 예뻣을것 같다..
경운궁의 편전이였던 덕홍전...
한옥건물에 샹들리에..봉황문양의 단청...오얏문양등으로 동.서양이 어울려 꾸며졌다..
덕수궁 프로젝트로 가구 디자이너 작품으로 크롬 도장의 의자를 설치했다....앉아보면 편하다지만...
그냥 바라보고 있으면 속이 울렁울렁 거리는 느낌이 든다..
왕의 침전인 함녕전...
우리나라 최초로 전화기가 설치되었고, 경운궁 일대를 잿더미로 만든 대화재가 시작된곳이기도 하다..
일제가 함녕전의 온돌을 수리한 뒤 말리던 과정에서 나무기둥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했는데....숯을 때던
우리의 온돌 구조상...그리 큰 불이 날수 없는 상황이라 일본의 방화가 의심되는 대화재라고 한다...
함녕전 두 개의 방 중에 동쪽은 고종이 서쪽은 후궁이 사용했다....
고종황제가 주무실때 보료를 3채 깔았다는 궁녀의 증언을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꾸몄다고 한다...
함녕전의 마루..
옛 전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아있는 연못가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마치 별궁처럼 떨어져있는 중명전...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이 설계한 2층 벽돌 건물로 경운궁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라한다..
처음에는 수옥헌으로 불리며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졌으나 경운궁 대화재로 고종이 임시 기거하면서 편전으로
사용되면서 1906년 이후에 중명전으로 불리게 되었다..
중명전....이곳에서 우리의 외교권을 빼앗기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건축당시 러시아에서 수입해온 타일로 만들어진 현관 입구....지금은 보호를 위해 유리 보호막이 만들어져있다..
을사늑약의 전문..
황제의 서명이 없고, 조약의 제목이 없고, 봉인되어있지 않은 조약은 성립될수없어 을사늑약은 무효다..
고종황제는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만방에 알리고자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게된다..그러나..
안타깝게도 뜻을 이루지못하고 이 일로 인하여 일제에 의해 고종이 강제 퇴위되는 계기가 되고말았다..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대한제국의 투쟁이 느껴지는 헤이그 특사 위임장..
요즘은 런던까지 비행기로 13시간 걸리는데...비행하다보면 이 시간도 길다고 투덜거리는데....
막중한 임무를 안고...배 타고..기차 타고...가는 특사의 여정이 너무나 멀기만하다..
비록 특사들이 회의장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세계 각국의 대표들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고,
각국 신문기자 단에 우리 정부의 입장을 알리는 등 외교적 노력을 아끼지않았다..
을사늑약이 발표되고 나서 발행된 신문기사...
이 날에 목놓아 울다....라 기사를 쓴 황성신문은 일제의 검열기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논설을 쓴 결과
사장은 구속되고 신문사는 정간에 처해졌다..
근대사회로 들어가면서 세계 열강국들 속에서 주권을 찾기위해 애쓰던 대한제국의 외로움과 아픔이
중명전을 통해 진하게 전해져오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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