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복잡한 도로를 피해 멀리가지않고 집에서 조용히 쉬기로한 연휴....파주에 있는 반구정을 찾았다....
황희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냈다는 반구정..
500원의 저렴한 입장료가 눈길을 끌었다...
황희선생 유적지로 들어간다..
조금은 썰렁해 보이지만....조용하게 쉬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을듯하다....
도시락을 가지고 와서 그늘에 자리를 깔고 앉아 쉬는 가족들도 보이고...넓은 정원을 맘껏 뛰는 아이들도 흥겨워보인다...
방촌영당.....황희선생의 영정이 모셔져있고, 제사를 지내는 곳 ..
경모재..
경모재 안에는 관복도 입어보고 사진도 찍어볼수 있게 되어있었다..가격은...글쎄...얼마인지..
이보영 작가의 황희선생이 태어난 지역의 풍경그림...개성 송악...
개성 송악산에 있는 용암폭포는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으나 어느날 어쩐일인지 물줄기가 열달동안
끊어졌다.....그런데 황희가 태어난 뒤에 폭포의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여 사람들은 황희의 탄생과 연관지어 황희가
큰 인물이 될것임을 예감했다고한다...
경모재에서 내다본 풍경이 여유롭고 시원하다...
조선초기의 명재상이며 청백리의 상징인 황희정승....
고려 우왕 2년에 음직으로 복안궁녹사가 되었다가 창왕 1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성균관학관이 되었다..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했으나 태조 3년 조선조정의 요청과 두문동 동료들의 추천으로 성균관학관으로 세자우정자
(세자선생)를 겸임하고 그 후 조선조정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세종 13년 영의정이 되어 18년간 세종과 함께
국정을 다스려 각종 문물제도 정비에 큰 공로를 세웠다....
앙지대 가는 길..
앙지대는 반구정이 원래 위치했던 자리이다...1915년 반구정을 현 위치로 옮겨지으면서 그 자리에 황희선생의 유덕을
기리는 마음으로 육각정을 짓고 '앙지대'라 불렀다...
앙지대에서 내려다본 임진강가의 모습이 시원하다...
탁 트인 시야....시원한 바람에 취할때 정신이 번쩍 드는 철망의 모습....안타까운 오늘의 모습이다...
앙지대에서 바라본 반구정...
황희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낸곳 반구정....
6.25 전쟁때 모두 불타 전소된것을 1962년 후손들이 부분적으로 복원해 오다가 1998년 유적지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반구정과 앙지대등을 목조건물로 새롭게 개축했다고 한다..
미수 허목선생 반구정기에 정자는 파주 서쪽 15리 임진강 아래에 있고....조수때마다 백구(갈매기)가 강위로
모여들어 들판 모래사장에 가득하다 9월이면 갈매기가 손으로 오고 서쪽으로 바다는 30리이다...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지금은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어....임진강 가까이 가 볼 수도 없지만.....넓은 모래사장 가득 갈매가가 모여앉아 있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장~관이다....
반구정을 바라보고 있는 황희선생...
방촌(호) 기념관..
명재상 황희 선생의 영정
두문동에 은거하고 있는 황희를 떠나보내는 친구의 시조...
인재를 알아보는 성군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명재상이 아쉬운 세상...청렴하고 원만한 인품으로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받았던 성군과 명재상의 만남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서각대....코뿔소 뿔로 만든 각대....재료의 희귀성과 상징적 의미로 귀하게 여겨졌다...
조선시대 관복대의 재료로 사용됬으며 결이곱고 누른빛이나 검은빛이 나는 꽃무늬가 있다...
옥서진....
황희 정승의 갓끈..
옥 벼루와 분재문서(자손들에게 재산분할에 대한 내용을 적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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