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떠나는 대구 기차여행
여행은 갈 수 있을 때 가는 거라고 했다
출근 안 하는 화요일
서울역에서 8시 12분 출발하는
ktx 열차를 타기 위해
새벽같이 서둘러 집을 나섰다
몇 번의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다
떠나는 기차여행
출발 전 플랫폼은 언제나
마음 설레는 순간이다
영등포와 수원에서 와다다 타더니
대전에서 우르르 내리고
다시
동대구거쳐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
약간의 지연도 있어서 11시가
다 되어
동대구역에 도착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대프리카라더니... 대구.... 덥다 🥵
그래도 비 보다는 낫다 😄
당일 기차여행이기에
생각한 대로 부지런히 고고고~~
오늘의 여정은
영남대로-마당 깊은 집-뽕나무골목
이상화. 서상돈고택-청라언덕-
3.1 만세 운동길-계산성당-
약령시한의약박물관-진골목-
대구근대역사관-경상감영길-향촌문화관
교동시장 개미분식-동대구역
동대구역 관광안내소에 들려
골목투어 지도 하나 챙겨서
생각하고 온 코스와 맞춰보며
대구 근대로의여행 길을 따라간다
관광안내소에서 추천한 2코스
계획하고 온 코스도 2코스
대구여행 시작인 반월당역으로 가려고
대구 지하철을 탔다
영남대로부터 보려고
반월당역에 내려 18번 출구로 나간다
반월당역 18번 출구로 나오면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와
길 건너 천주교 성지순례지인
관덕정 순교기념관이 보인다
대구 근대골목투어 2코스는 볼거리가
도래도래 있어서 둘러보기 좋았다
현대백화점 오른쪽 길로 가면
백화점 뒷길이 옛 선비들이 과거 보러
한양 가던 길목 영남대로다
부산 동래에서 한양 탄천까지 열나흘
걸려 영남대로를 열나흘길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부산에서 한양으로 가는 최단거리
약 960리 (약 380km)를 걸어
양재에 도착했다니
입신양명의 길이 쉽지 않다
말과 풍속이 다른 지역을
넘어가며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걸었던 과거길
재를 넘어 오고가며 녹녹지 않았을게다
열나흘을 걸어 한양에 도착해서
숭례문과 흥인지문을 통해 도성에
들어 문과(소과. 대과)와 무과의
과거시험을 봤다
길지 않은 영남대로의 이야기를
읽어가며 벽화를 보다보면
비장한 마음으로
영남대로를 걸었을 옛 선비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엽전 조형물도 보인다
엽전을 지나치면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이 나온다
골목길에 그려진
마당 깊은 집의 이야기를 보면서
마당 깊은 집으로 간다
작고 아담한 마당에
날이 덥지만 않다면 잠시
앉아도 좋겠지만 더우니까
전시관 실내로 호다닥~^^
김원일 작가의 자전적 소설
마당 깊은 집의 길남이 식구들
60년대 시절에 낯설지 않은 셋방살이
아등바등 살아가던 와중에도
이웃의정이 살아있던 시절 이야기
아들과 맏이들의 책임감도 막중했던
시절이야기
드라마 마당 깊은 집 영상도
감상하며 잠시 돌아본다
하루에 천냥이 나오는 명당
뽕나무 골목길에
명나라 장수였다가 조선으로 귀화한
두사충의 이야기도
들어본다
마당 깊은 집을 나와
엽전 조형물을 끼고돌면
짧은 뽕나무 골목길이 나온다
시인 두보의 21대손인 중국 두릉사람
우리나라 두 씨의 시조이기도 한
두사충
임진왜란이 끝나고 위기를 겪는
조선을 보면서 명나라 장수였던
두사충은 명나라의 위기를 직감하고
명이 기울고 청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조선사람이 될지언정 오랑캐의
백성은 될 수 없다 하며
조선에 귀화한다
조선 조정에서 극진히 대우하며 그가
원하는 곳에서 살게 해 주었다
풍수지리에도 밝았던 두사충이
처음 정착한 곳은 지금의 경상감영공원
자리였다
하루에 천냥이 나온다는 명당으로
오늘날 대구 상업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이 경상 감영부지로
결정되자 두사충은 나라를 위해 흔쾌히
그 땅을 내주었다
그의 기특한 마음에 조정은 지금의
계산동 땅을 하사하였는데
조선의 열악한 의복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두사충은 집 근처에
우리나라 처음으로 뽕나무를 가져와
누에를 치며 비단을 생산하기로 했다
두사충은 집 근처에
뽕나무를 많이 심고 가꾸었다
그래서 계산동 일대가 뽕나무 골목
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뽕나무 골목길 끝에 바보주막
이곳은 이상화 시인의 형이기도 하고
독립운동가인 이상정 장군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파일럿이며
독립운동가인
권기옥여사의 집터였다
바보주막 맞은편에
서상돈 고택과 이상화 고택이
마주 보고 있다
자주자강의 정신을 실천한 서상돈
1906년 대한제국정부가 당시 일본에게
강제 차관 도입으로
1300만 원이라는 거액의 빚을
지게 되었다 이때 서상돈은 일본 빚을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하여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처음 발의하였다
비록 국채보상운동은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지만
국권회복을 위해 온 국민을 단결시킨
자발적인 사회운동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깊다
서상돈 고택을 보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민족저항시를 남긴 이상화 시인
고택을 둘러본다
이상화 시인이 말년을 보낸 곳으로
마지막작품
서러운 해조를 이곳에서 완성 했다고 한다
이상화 시인 집 앞 계산예가에서
여러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계산예가를 지나 청라언덕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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